"노여움을 감추지 못하다"를 영어로?

▶ betray a touch of anger

번역일: 2017.11.7
2017.11월 5일부터 7일까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신조 아베 총리와 이루어진 미일 정상회담이 많은 후일담을 낳고 있다. 그중 신조 아베와 나란히 연못에서 물고기 밥을 주었던 이벤트가 인상적이다. 
아베와 트럼프는 물고기밥이 들어있는 나무통을 건네받아 숟가락으로 물고기 밥을 두세 번 떠 주다가 갑자기 통째 뒤집어 물고기 밥을 연못에 털어버리는 모습이 포착되었는데 한 나라의 정상으로서의 품격과 매너를 느끼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물론 트럼프는 아베 총리를 따라 한 것이라고 하긴 했지만, 아베가 물고기통에 밥이 너무 많아서 난감한 듯 고민하다가 채를 치듯 남은 물고기밥을 연못에 털어내는 반면 트럼프는 한 술 더 떠서 경망스럽게 통을 확 뒤집어 물고기밥을 훌훌 털어버린다. 그 와중에 그의 얼굴 표정과 입모양이 마치 개구쟁이 모습같이 천연덕스럽기까지 하다. 
연합뉴스는 11월 7일자 인터넷판에서 이번 미일 정상회담을 전반적으로 평가한 11월 6일 자(미국 시간)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의 기사를 거의 번역 수준으로 옮긴 기사를 실었는데, 전반적인 기조는 약간 심하게 말하면 아베가 트럼프의 꼬붕 같았다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같은 기사에서 신조 아베 총리를 트럼프의 "loyal sidekick"이라고 제목을 뽑았는데, 연합뉴스는 이 부분을 "충실한 조수 역할"이라고 옮겼다. 사실 "sidekick"은 그냥 "조수"라고 표현하기에는 어감이 와닿지 않는다. 영어의 "assistant"도 "조수"라고 번역될 수 있는데, "sidekick"과 "assistant"는 엄연히 어감이 다르다. "sidekick"이 격없이 쓰이는 표현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말에서는 "꼬붕" 또는 원래는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이지만 자신보다 낮은 사람을 흔히 얕잡아 부르는 "얼라"에 가까운 말로 아베 일본 총리를 완전히 뭉갠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아베는 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때부터 취임도 하기 전에 제일 먼저 미국으로 달려가 선물 보따리를 안기는 등 마치 새침한 여자의 마음을 사고 싶어 몸이 단 남자처럼 끊임없이 구애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2016년 11월 당시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었던 도널드 트럼프를 찾아가 아베 총리가 선물한 것은 다름 아닌 금장 골프 클럽이었는데,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가격이 무려 3,800달러에 육박하는 혼마(Honma) 드라이버(모델명: Beres S-05)였다. 트럼프의 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고려한 아베의 세심한 선물이었던 듯하다. 워싱턴 포스트도 같은 기사에서 이 골프채 선물을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런 아베의 트럼프에 대한 구애를 트럼프는 악수하면서 아베의 손을 꽉 틀어쥐어 화답하며 누가 alpha male(한 집단에서 지배력을 갖는 수컷)인지 몸소 보여주기도 했다. 
연합뉴스는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를 거의 그대로 옮겨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 중에도 "여러분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 중 하나를 이룩했다"며 원고를 읽다가 고개를 들고 "우리 경제만큼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괜찮은가(okay)"라고 애드립을 하자, 아베 총리는 겉으로는 웃음을 보였으나 반신반의하는 듯한 표정을 잠깐 노출시키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여기서 연합뉴스가 "반신반의하는 듯한 표한 표정을 잠깐 노출시키기도 했다"라고 옮긴 부분을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는 영어로 어떻게 쓰고 있었을까? 그 문장은 바로 "His face betrayed a touch of uncertainty."였다. 이 문장의 핵심은 동사 "betray"이다. 우리는 "betray"를 "배신하다"라고 알고 있지만, 이 문장에서 "배신하다"라고 하면 문장이 상당히 어색해진다는 것은 뻔하다. 
동사 "betray"는 "배신하다"라는 의미에서 더 나아가 "애써 숨기려 하는 어떤 감정 상태가 무의식중에 드러나다"라는 의미가 있다. 즉, 애써 특정 감정을 감추려 하지만, 표정이나 태도 등에서 그 감정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우리말 표현으로는 "감추지 못하다"라고 하면 의미가 잘 전달된다. 연합뉴스는 "betray"를 " ~ 표정을 잠깐 노출시키다"라고 옮긴 것인데, 이렇게 옮기면, 의식적으로 특정 표정을 드러냈다"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그러나, 실제로 "betray"는 "의식적으로는 감추려 했지만, 표정이 다른 동작에서 그 감정이 간접적으로 드러나다"라는 의미인 것이다. 참고로 "a touch of"는 원래 "있는 듯 없는 듯 약간"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a touch of uncertainty"는 "난감한 기색"이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원문에 충실하게 다시 옮겨보면, "그의 얼굴은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라고 할 수 있다. 
구글 번역기는 "betray" 뿐만 아니라, "a touch of"도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아 전반적으로 번역의 가치가 없는 문장이 산출되었다.
▶ 수정번역: 그의 목소리는 노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 "betray a touch of" in Media

Greeting a visitor to her office at Wolfensohn Fund Management earlier this month, Diana Taylor betrayed a touch of jitters.
<New York Times, 2013.12.27>
Diana Taylor는 이달 초 Wolfensohn Fund Management의 자신의 사무실에 온 손님을 맞이하면서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결이 다르다"를 영어로?

"주상복합 아파트"를 영어로?

"촉촉한 쿠키"를 영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