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한 쿠키"를 영어로?

▶ gooey cookies

번역일: 2017.10.15


"Chips Ahoy(칩스 아호이)"는 필자에게 촉촉한 쿠키가 무엇인지 알려준 쿠키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칩스 아호이"를 처음 접한 것이 1990년대 초반이었는데, 처음 한 입 깨물었을 때 그때까지 먹어온 한국의 여느 비스킷처럼 힘없이 부서지지 않고, 위아래로 누르는 이의 압력을 여유 있게 버텨주던 그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이야 먹거리 수준이 높아지고, 디저트 문화도 하루가 다르게 고급화되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가 밥 먹고 디저트까지 챙겨 먹는 시대가 된 것이 한 세대도 되지 않은 일이다. 고급 아이스크림이라면 빙그레 "투게더"가 다인 줄 알던 우리들에게 아이스크림 맛(flavor)은 서른한 가지 정도는 되어야지라고우쭐한 듯 새로운 아이스크림 맛의 세계로 눈뜨게 한 "배스킨 라빈스"는 건강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취급되고 고급 아이스크림 축에 끼지도 못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쿠키도 지금은 프랑스에서 공부한 사장님이 운영하는 수준 높은 베이커리들이 동네마다 있어 재료를 아낌없이 넣은(그 대신 가격도 만만치 않은) 묵직하고 촉촉한 쿠키를 먹어보는 일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구매대행, 배송대행도 없던 90년대 초반만 해도 "칩스 아호이"는 미군 부대 안에서나 유통되는 고급 쿠키로 통했다고 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결국 "칩스 아호이"도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공장 쿠키에 불과하지만, 그런 촉촉함과 끈기의 비결은 쿠키 반죽 자체보다 쿠키의 반은 차지할 듯한 덩어리 큰 초코 칩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적절한 수분을 머금은 초코가 쿠키 전체적으로 알맞은 습기를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이 틀림없다. 사실 "칩스 아호이"는 촉촉함 그 자체보다는 초코칩이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이 셀링 포인트이기도 하다. 이를 말해주듯 "칩스 아호이"의 대표적 태그라인(Tagline)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You cannot take a bite without hitting a chocolate chip".(한입 깨물 때마다 초코칩이 씹힌다.)

 "칩스 아호이"는 "오레오 쿠키"로 유명한 미국의 나비스코(Nabisco)사의 제품이다. 나비스코사는 금융계에서는 쿠키보다 M&A에서 최고가 낙찰로 더 많이 회자되는 기업이기도 하다. 나비스코는 1985년 담배 회사인 R.J. Reynolds 사와 합병하면서 "RJR Nabisco"가 되는데, 1988년 미국 최고의 사모펀드라고 할 수 있는 KKR(Kohlberg Kravis Roberts & Co.)가 주당 100불이 넘는 당시 최고가로 RJR 나비스코를 LBO(Leveraged  Buy-Out) 방식으로 인수해서 화제가 되었다. 그 당시 알만한 미국 금융기관들이 총동원된 빅딜이었으며, RJR 나비스코를 KKR이 인수하기까지 과정을 저널리스트 출신의 두 저자가 자료와 인터뷰를 총동원해서 "Barbarians at the Gate"라는 책으로 내기도 했다. 이 책은 두텁긴 하지만 정말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재미있는 소설처럼 읽힌다. 우리나라에서는 "문 앞의 야만인들"이라는 제목으로 거의 1,000페이지에 가까운 한글 번역본이 크림슨에서 출간되었지만, 지금은 아쉽게도 절판된 것 같다. 

RJR 나비스코의 매각은 그 당시 미국의 주간지 "Time"은 커버에 "A Game of Greed"라는 대문짝만 한 제목과 함께 "RJR 나비스코"의 CEO였던 "Ross Johnson"가 표지 모델로 장식할 만큼 유명한 사건이었다. "Ross Johnson"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주식회사에서 주주의 대리인에 불과한 CEO가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해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일보다 자신의 부를 축적하고 회사 자원을 낭비하여 기업과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인물로서 경제학에서 말하는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그는 여러 대의 Corporate Jet(회사 전용기)를 보유하고, 그것들을 수용할 비행기 격납고(hangar)를 지었는데 RJR 나비스코가 매각된 후 회사 자산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이 비행기 군단을 사들일 매수자가 선뜻 나설 수 없을 만큼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CEO 생활을 했다고 한다. 참고로 KKR은 2009년 OB맥주를 18억 달러에 인수해 우리나라에서도 이름을 알린 적이 있다. 촉촉한 쿠키 얘기로 돌아와서 이 "촉촉한"을 어떤 영어 단어로 옮겨야 할까? "촉촉한 것"은 "축축한 것"과 다르고 "눅눅한 것"과도 다르고, "젖은 것"도 아니다. 우리말에서 느껴지는 이 촉촉한"의 느낌을 영어의 어떤 단어가 가장 잘 묘사할까? 
우리말처럼 영어에서도 젖었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단어는 "wet"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눅눅하다"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단어는 "damp"가 있다. 또 우리말에서 "눈물 젖은 빵"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빵이 물을 한껏 빨아들인 모습이나 시리얼이 우유에 빠져 잔뜩 물기를 머금고 흐느적거리는 느낌을 전해주는 단어는 "soggy"이다. 또 "이슬 젖은"이라는 표현은 영어로 "sodden"을 써서 "dew-sodden"이라고 한다. 
그런데 "촉촉한 쿠키"의 "촉촉함"은 앞의 열거한 단어들의 느낌과는 다르다. "촉촉함은 완전히 젖은 것이 아니라 적당한 말랑함을 유지하면서도 잘게 부서지지 않고 쿠키 입자들을 잡아줄 정도의 습함"이다. 마치 놀이터의 우레탄 바닥을 밟을 때의 기분 좋은 물컹함과 탄성을 유지하는 그런 습함이어야 한다. 이때 영어에서는 "gooey"를 쓰는 것이 제격이다. 한번 깨물었다 놓으면 다시 제자리로 복원될 것 같은 말랑한 느낌의 쿠키에 대해서 "gooey cookie"라고 할 수 있다. 
구글 번역기는 "gooey"를 "끈적거리는"이라고 해서 쿠키 맛이 뚝 떨어지는 번역을 했다. 


▶ 수정번역: 이 촉촉한 쿠키 맛을 봐야 한다. 


▶"gooey cookie" in Media


Some of the tastiest food in the city—chicken and waffles, mac 'n cheese, ooey-gooey cookies—comes from the kitchens in West Harlem.
<City Guide NY, 2017.9.29>
치킨과 와플, 맥앤치즈, 촉촉한 쿠키 같은 뉴욕시의 가장 맛난 음식들 중 몇 가지는 West Harlem에 있는 키친들에서 나온다. 
*ooey-gooey: "ooey"는 "gooey"와 운을 맞추기 위해 쓴 말장난으로 "ooey"는 별뜻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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