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를 단돈 천 원에 샀다고?

▶ consideration

번역일: 2017.10.17
For and in consideration of the sum of One Dollar, and other good and valuable consideration, the receipt of which is hereby acknowledged, the “Grantor” does hereby convey its title to the “Grantee”.
위에 주어진 영어 문장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장이 아니고, 해석하기도 쉽지 않다. 영문 계약서 내용의 일부를 가져와 학습 목적으로 약간 축약한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계약서의 목적은 "Grantor"(양도인)이 "Grantee"(양수인)에게 어떤 목적물(예를 들어 건물이나 토지 등 부동산)의 소유권(title)을 넘기는 것이다. 
계약서의 문장은 좀 복잡하지만, "One Dollar"가 눈에 띈다. 약간 변형이 있긴 하지만, 권리를 이전하는 계약에서 위와 같거나 비슷한 문구를 자주 볼 수 있다. 우리는 "One Dollar" 말고도  "consideration"에 주목해야 한다. 그럼 "consideration"에 대해서 알아보기 전에 이해를 돕기 위해 영미 계약과 우리나라의 계약을 좀 비교해  보자. 
잠깐 퀴즈를 먼저 내보겠다. "증여"는 "계약"일까, 계약이 아닐까? 짧은 답은 "그때그때 다르다"가 될 것이고, 좀 더 구체적인 답은 우리나라에서는 "계약"이고 "미국"에서는 계약이 아니다. 
"증여"는 영어로는 "gift"라고 하는데, 사실상 증여를 하는 사람만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받는 사람은 넙죽 받기만 하면 되고 주는 사람에게 다른 의무를 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계약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계약 당사자의 한쪽이 "청약(offer)"를 하고 다른 한쪽이 "승낙(acceptance)"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A가 B에게 아파트 한 채 줄게"라고 하고 "B"가 "알았어. 잘 받을게."라고 하면 A의 청약이 있고, B의 승낙이 있기 때문에 유효한 계약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청약"과 "승낙"이 있으면 계약(contract)이 성립하는 반면, 미국에서는 "청약"과 "승낙"만으로는 계약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럼 뭐가 또 필요할까? 바로 우리가 살펴볼 "consideration"이다. 
"consideration"이야 "고려"라는 뜻으로 누구나 알만한 단어이지만, 이 단어가 영문 계약서에 등장한다면 "고려"라는 의미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영문 계약서에서 "consideration"은 우리말로 보통 "약인"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사실 "약인"이라는 단어도 한글로 옮겼을 뿐이지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가 아니다. "consideration"을 그래도 가장 이해하기 쉽게 푼다면 "대가"에 가깝다. A가 아파트를 준다고 했으면, B도 그에 대해서 뭔가 주어야 한다. 부동산 계약이라면 양도하는 부동산에 대해서 보통 돈을 지불하게 되는데, 이때 부동산과 돈이 "consideration"이 된다.  결국 영미법에서는 "청약"과 "승낙" 외에 이 consideration"이 있어야 계약이 성립하는데 증여는 한쪽이 가치 있는 것을 주는데 다른 한쪽은 그 반대급부로 제공하는 것(consideration)이 없어서 계약의 필수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consideration"은 서로 대등한 가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즉, 매도하고자 하는 아파트가 시장에서 10억 가치가 있다고 해도 계약 상대방에게 1천 원에 파는 계약이 불공평하다고 해서 계약이 안되는 것이 아니다. 1천 원도 계약을 성립시키기 위한 "consideration"으로 인정될 수 있다.
"For and in consideration of the sum of One Dollar"는 이런 영미 계약의 특징으로 인해 관행적으로 삽입되는 계약 문구라고 할 수 있다. 계약이라는 것이 해석의 여지도 있고, 계약 당사자가 마음이 바뀔 수도 있어서 한쪽이 계약을 깨고 싶을 수도 있다. 미국의 계약 무효 소송에서는 "consideration"이 있는지가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는데, "consideration"이 없다는 이유로 계약이 애시당초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판결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달러의 consideration"이라고 계약서에 문구를 일단 박아놓아서, 약인의 유무 관련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를 보게 된다. 
그리고, 1달러라는 consideration으로 인해 정말 1달러로 계약의 목적물을 인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금액이나 가치를 특정하지 않은 "other good and valuable consideration"이라는 문구가 따라붙기 때문에 아파트를 1달러 팔아야 할 걱정은 없다. 최종 아파트 가격은 "other good and valuable consideration"이라는 부분에 다 들어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아파트를 천 원(1달러)에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요즘은 김밥천국에 가도 천 원짜리 김밥도 먹기 어려운 세상이지 않은가? 다이소에 가도 천원 넘는 물건이 수두룩하다. 그러니 아파트를 천 원에 살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자. 
부동산 계약 같은 중요 영문 계약은 구글 번역기에 의존해서 끝낼 수는 없을 것이다. 
▶ 수정번역: 이 계약서에서 받은 것을 인정하는 1달러의 금액과 다른 가치 있는 약인(대가)에 대해서 양도인은 이 계약에 따라 양수인에게 그 소유권을 이전한다. 

▶ "consideration" in Media

"For and in consideration of Five hundred and twenty five dollars to me in hand," it says, a man and his future heirs have thus purchased forever "a certain negro woman named Fanny and her two children Romio and Della."
<Tampabay.com, 2016.2.25>
그것(책)에는 "내 수중에 525달러를 주는 대가로 한 남자와 그의 미래의 상속인들이 Fanny라는 이름의 어떤 흑인 여성과 그녀의 두 자녀 Romio와 Della를 영구적으로 구매했다"라고 쓰여 있다. 
* heir: 상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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