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인가, 원수인가?

번역일: 2017.10.1

▶ frenemy

겉으로는 친한 척하면서 사실은 등에 칼 꽂는 주변의 친구나 직장 동료를 표현하는 아주 효율적인 단어가 "frenemy"이다. "friend"와 "enemy"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인데, 영어에서는 이렇게 발음에 공통분모가 있는 두 단어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단어를 "portmanteau"라고 한다. "portmanteau"는 철자를 보면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원래는 "가운데가 이등분이 되게 입이 넓게 열리는 가방"을 칭하는 말이다. 특히 이렇게 열리는 우편 가방을 "portmanteau"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그런 의미로는 잘 쓰이지 않는다. 
이런 "portmanteau"의 예로 "brunch"라든가, "motel"이 있다. 각각 "brunch"는 "breakfast"와 "lunch"의 합성어이고, "motel"은 "motor"와 "hotel"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brunch"는 우리말에서도 "아침 겸 점심"이라는 의미의 "아점"이 있는데, "brunch"라는 단어에 점령당해서인지 요즘 거의 쓰이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또 요즘 자주 쓰이는 단어 중 하나인 "bromance"는 "brother"와 "romance"가 합쳐진 말로 "성적인 관계는 배제된 남자들 간의 친밀하고 돈독한 관계"를 가리킨다. 이 단어는 영어에서도 상당히 최근에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신조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말에서도 요즘 신조어들이 많이 생산되고 있고, 인터넷으로 인해 유통 속도도 엄청나게 빠르다. 우리말에서는 각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드는 합성 방식이 주를 이룬다. 예를 들어, "안습"은 "안구에 습기 차다",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낄끼빠빠"는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케바케"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 등 다양한 신조어들이 만들어지고 급속히 퍼지고 있다. 
앞에서 두 단어의 발음상 공통분모를 활용해 결합해 만드는 합성어를 "portmanteau"라고 한다고 했는데, 영어에서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방법 중에는 여러 단어로 이루어져 한 의미를 이루는 구문의 각 단어의 알파벳 첫 글자를 따서 결합해 만드는 경우도 정말 허다하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단어 중 마치 한 단어인 것처럼 발음하는 경우가 있고, 각 알파벳을 따로 발음하는 경우가 있는데, 굳이 마치 한 단어처럼 자연스럽게 발음하는 경우는 "acronym"이라 하고, 각 알파벳을 따로 읽어주는 경우는 "initialism"이라고 구별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AIDS"는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에서 각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acronym"인데, 우리는 이 단어를 "에이 아이 디 에스"라고 읽지 않고, "에이즈"라고 읽는다. 이런 경우 "acronym"이라고 할 수 있다. 한창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SARS"도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의 앞 글자를 따온 "acronym"으로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을 뜻한다. 이 밖에도 "NASA"도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의 acronym으로 "미 항공 우주국"이지만, 이렇게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마치 "NASA"가 처음부터 고유명사인 것처럼 굳어졌다. 이런 단어들은 모두 알파벳을 따로 띄어 읽지 않고, 한 단어처럼 발음한다. 
우리가 워낙 "acronym"에 익숙해서 이 단어가 태생이 약어인지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단어가 "laser"와 "scuba"이다. 이 단어들은 워낙 약어가 한 단어처럼 발음되고 쓰이면서 심지어 대문자 표기도 하지 않고, 한 단어처럼 소문자로 쓰이고 있다. 원래 "laser"는 "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의 약자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laser"의 "full name"을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scuba"도 "Self-Contained Underwater Breathing Apparatus"의 약자로 "잠수용 수중 호흡 장치"를 의미하지만 워낙 acronym 자체가 더 유명해서 원래부터 고유의 단어였던 것처럼 소문자로 표기되고 있다. 

이에 반에 "DNA"는 "DeoxyriboNucleic Acid (디옥시리보 핵산)"에서 알파벳 3개를 채취해서 만든 약어로 "디 엔 에이"라고 각 알파벳을 따로 발음하는데 이런 경우는 "initialism"이라고 할 수 있다. 

"frenemy"는 이미 1950년대 만들어진 단어이지만, 구글 번역기는 이 단어를 잘 모르고 있다. 사실 이 단어에 걸맞은 우리말 단어도 없기는 하다. 굳이 우리말 단어를 만들자면 "친적(친구 + 적)"이라고 해야 할까? 
▶ 수정번역: 친적들은 너무 빨리 가까워지고 싶어 한다.

▶ "frenemy" in Media


The IMF came forward as Greece's savior during Europe's financial crisis, but now it looks more like a frenemy.
<Bloomberg, 2017.9.18>
IMF는 유럽의 재정 위기 동안 그리스의 구원자로 나섰지만, 지금은 "친구인척하는 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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